'백수'라는 정체성과 처음 만난 지 몇 개월.
목적 없이 나갈 이유도 딱히 없고, 외출은 돈과 시간이 든다.
백수가 되니 원래도 좋아했던 집이 더 좋아지더라.
그런데 백수 기간이 길어지니, 내 자신이 너무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생각들이 많아지고, 잡념들이 나를 괴롭혔다.
뭐라도 일단 해보자 싶었다.
그렇게 떠올린 것이 도보 여행.
한강공원을 따라 성수동 블루보틀까지 무작정 걷는 일을 계획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행거와 인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일찍 일어날 이유가 없으니, 해가 중천일 때 일어난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백수 최고.
옷은 더욱 더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사람은 생각보다 많은 옷이 필요하지 않음을 느낀다.
한국은 왜 네 개의 계절이나 있을까...
그나마 아름답고 즐기고 싶은 봄, 가을은 짧다..
의류회사만 좋을 일이다 싶다.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게 입고 대충 챙겨 집을 나선다.
한강이 가까워 한강공원까지 가는 거부감도 없다.
몇 분정도 걷다 보면 한강공원이 보인다.
이사온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새 동네는 참 좋다.
이질적이지도 않고, 사람 냄새가 나는 동네다.
올림픽대로였나, 한강공원 위에 다리가 하나 놓여있다.
날씨가 좋고 먼지가 별로 없다는 걸 실감하게 되는 지점이었다.
'운수 좋은 날이군'하고 생각했다.
반포 한강공원에 도착하기 전 동작대교를 향하여 가는 길이다.
요 며칠의 날씨는 굉장히 춥다가, 따듯하다가를 반복한다.
이 날은 선선했다.
햇살 머금은 한강이다.
사람이 없던 덕분에 사진 찍기도 수월했다.
블로그에 글을 쓰기 위해 사진을 찍다 보면, 겸연쩍을 때가 종종 있다.
사진 찍는 행위 자체가 즐거운데도 그렇다.
왜 눈치 보며 살까.
슈퍼 에고로 사진을 잘 찍고 찍히는 몇몇 여성분들이 부럽다.
水難(수난) 물난리 구조대겠지만,
내 백수기간인 受難(수난)을 구조해주셨으면 좋겠다.
불철주야 고생하시는 소방대 구조원 분들..
한강공원을 걸으면서 '한강이 이렇게나 아름다웠나'싶었다.
동작대교를 지나자마자 억새길들이 펼쳐진다.
가을의 한강변을 걸어보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아름다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없어서 좋았다.
길을 걷다보면 사색에 잠길까 걱정이었지만, 오히려 생각은 없어진다.
계속 길을 걸을뿐..
왠지 모르게 잊고 지내던 노래가 생각나기도 해 흥얼거린다.
가을에 봄노래를 부른다던가.. 하는 그런 생뚱맞은 일들이 생긴다.
최첨단 풍향계처럼 생겨서는 끼익-끼익 소리를 낸다.
기름칠이 좀 필요하겠어.
어릴 적에는 이런 강변 풍경 찍지 않았는데.
열심히도 찍었다.
최근 여름 장맛비가 오래도록 내리면서, 잠수교에 대한 정보들을 많이 본 기억이 난다.
그게 생각나서 찍었다.
수해가 빠르게 복구되어 다행이었다.
많은 분들이 힘을 합친 노고의 산물이겠지.
송전탑을 보면, 일본의 도쿄가 생각난다.
강변 북단과 남단을 잇는 송전탑이 있었다.
언제쯤 코로나가 끝나서 국가 간 해외여행을 마음 놓고 할 수 있을까.
화이자가 임상시험 3상 과정에서 90% 효과를 보이는 백신을 개발했다는데, 효과적이면 좋겠다.
강변에 강스장이 있었다.
벤치 랙이 세대나 있다니, 가슴이 웅장해졌다.
집이랑 가까웠다면 헬스장은 가지 않았을 테야.
물론, 바벨 플레이트는 몇 개 없었지만..
물에 빠진 시민을 구하다 돌아가신 분을 기리기 위한 비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부모는 얼마나 슬펐을까.
따듯했던 햇살이 내 마음도 따듯하게 만들어줬다.
별 거 아닌 일상이 이렇게 충만해질 줄이야.
걷는다는 일 자체만으로도 보람이 느껴졌다.
동호대교를 걸어 다니는 사람은 나 혼자였고, 우리나라에 벤츠는 참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열대가 지나가는데 여섯~일곱 대는 벤츠였다.
부자가 참 많구나.
차 반대방향으로 홀로 걷는다는 것은 꽤나 민망했다.
주행 반대방향으로 걷다 보면 꽤나 다양한 인간 군상을 접할 수 있다.
핸들에서 손을 떼고 휴대폰을 하거나, 갑자기 박장대소를 하거나, 코를 파거나(?)....
흥미로웠다.
그동안은 또 좀 가물은 건지, 흙을 퍼다 나른 건지..
동호대교에서 바라본 한강 전경.
한강은 참 크다.
금호나들목쯤 나오니, 슬슬 '그만 걷고 싶은데?'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웬걸, 멀리서 따릉이 정류소가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헐레벌떡 왔지만.. 따릉이가 없었다.
빅텍(*) 선생님들.. 조금만 더 고생해주세요.
*따릉이 관리업체
하늘을 보니 뻐근했던 목이 조금은 시원해진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목 스트레칭하세요~~
희한하게도 계속해서 주행 반대 방향으로 걷게 됐다.
민망함은 덤.
번외로 이런 차도도 인도가 있다는 사실이 참 놀라웠다.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내줬더니, 아재 냄새난다고 놀림을 받았다.
술냄새 풍풍이들이 흥.
목적지가 보인다.
웬 공장이 있어서 참 신기했다.
서울에는 이제 큰 공장이 없지 싶었는데.
시멘트 공장 같았다.
근처에 레미콘 트럭이 자주 보이는 걸 보니..
걷다 보니 인도가 너무 좁았다.
이 사진 전에는 중간에 인도가 끊어져 있었다.
이게 머선 일이고..
가을 색감이 참 좋다.
사람이 없어서 더욱 좋았고.
블루보틀에 가까워질수록 힙하신 분들이 많아져 머쓱해졌다.
한강변을 걸을 때는 대부분 등산복이나 운동복 차림이어서 마음이 편했는데..
너무 원경만 찍었나 싶어 목적지를 1km 남기고 낙엽도 찍어봤다.
와 드디어 성수점 블루보틀을 와봤다!
B1이 주 운영층인 걸 모르고, 처음엔 로스팅만 하는 곳인가? 하고 당황했다.
오늘의 3시간 여정은 끝났다!
15km를 연장 걸어봤는데, 한 건 딱히 없지만 보람찼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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